덕업일치 잡념

 그러나 아무리 해도 타인본위로는 성립할 수 없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자, 철학자 혹은 예술가와 같은 직업으로서 이들은 하나의 특별한 계급으로 간주할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철학자나 과학자와 같은 사람들은 세상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먼 분야만을 연구하기 때문에 세상의 마음에 들려고해도 그 마음에 들 수가 없고, 세상 쪽에서도 이들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연구의 성과를 구입하거나 혹은 구입하지 않거나 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인간들이 유별나게 실험실에 들어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을 하거나 또는 서재에 틀어박혀 깊은 생각에 잠겨 만사를 등한히 취급하는 모양을 보면, 세상에서 저 정도로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예술가도 또한 그렇습니다. 옆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하면 평가가 가장 좋을 것이고, 저렇게 하면 겨우 생계를 유지할 뿐이라는 등 이러저러한 충고를 할 만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본인은 결코 그러한 책략에 구애되지 않고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을 때를 택해서 좋아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쓸 뿐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사자도 이미 한 인간인 이상, 그에 상응한 물질적 보상이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다소 세상과 타협을 하며 보조를 맞추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략적으로 말해서 자아중심적인 작업임에는 분명합니다. 매우 비근한 도덕적 관점에서 말하면 이 정도로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이만큼 도락적인 직업은 없을 것입니다.
 이미 말한 대로 대개 직업으로서 성립하기 위해서는 뭔가 타인을 위해서 일하는, 즉 세상의 기호에 부합하고 일반의 욕구에 응하는 바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원리적 입장에서 말하면 도락본위의 과학자나 철학자, 혹은 예술가라는 자들은 그 자체의 입장에서부터 이미 직업의 성질을 상실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현 사회에서 그들은 명목상으로는 직업 축에 끼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생각한 것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보수를 받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이외의 사정은 짐작이 갈 줄 믿습니다. 실제로 과학자 · 철학자 등은 직접 세상과 거래를 해서는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정부의 보호 아래서 대학교수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역할을 하면서 겨우 이슬 같은 목숨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예술가 중에서는 때때로 받아들여주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면서도 자연본위를 끝까지 밀고 나간 사람이 매우 참담한 경우로 빠져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
 이상 말씀드린 과학자, 철학자 또는 예술가의 유형이 충분히 직업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하나의 의문이지만, 이들은 자신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기본위로 하지 않으면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타인을 위해서 일을 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없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술가로서 자기 자신이 없는 예술가는 매미의 빈 껍질처럼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구상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고, 단지 타인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열심히 노력한 작업에는 자기 자신의 정신이 깃들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작업의 산물은 모두 위조품이 되어 혼이 깃들 여지가 없게 될 뿐입니다. (···)
 예술가나 학자라고 하는 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모두 제멋대로 하는 자들입니다만, 그 제멋대로 하는 성격 때문에 그들의 길에서 성공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도락은 곧 본래의 직업[本職]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때가 아니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장식하지도 않습니다. 지극히 뻔뻔스러운 도락자이지만 이미 그 성질상 도락본위의 직업을 삼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고 강요하거나 또는 억지로 자연을 왜곡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삶을 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나츠메 소세키(황지헌), 「문명론」, 소명출판, 2004, p.72-76.


 나츠메 소세키가 이 강연을 한 것이 1911년인데, 그가 지적한 내용들은 한 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물론 반드시 자기본위의 직업이 반드시 물질적인 궁핍을 담보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덕'이라고 지칭될 정도로 마이너한 분야라면 그럴 개연성이 제법 높지 않겠는가. 요즈음의 자기계발서에는 성공하기 위해서 직업을 취미로 만들라는 둥의 충고가 흔한데, 결국 우리에게는 '업'을 선택하기보다는 '덕'을 갈아치우는 것이 더 권장되는 셈이다. 


덧글

  • 긁적 2011/05/17 04:10 # 답글

    ㅋ. 철학자와 예술가는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하지만 과학자는 외부에서 프로젝트 따오느라 바쁘다능 (.......)
  • Safranine 2011/05/20 21:26 #

    그렇다고 프로젝트가 항상 자기 입맛대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ㅜㅜ
  • 2011/05/18 23:46 # 답글

    제 에바 사랑을 습작에 써먹을 수...

    ...없겠지요 넹.
  • Safranine 2011/05/20 21:26 #

    가능은 하겠져. 다만 그걸로 돈을 받으려고 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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